천원돌파 그랜라간
1. 애니 볼 시간이 있냐고, 내 생활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물을만 하다. 의외로 바쁘게 사니까. 아니 해야할 일들이 많으니까.
사실 나 스스로도 의아해 하면서, 아니 나 스스로에게 과연 이렇게 꼭 해야하는지 계속 물으면서 이 시간들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작품을 보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항상 다 보고나서 잠깐씩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즐기면서 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후회할 맘도 없다.
두 개의 장편 애니를 최근들어 연달아 정주행 했는데 25편짜리 시리즈물이 총 3시즌이었으니 시간만 계산해도 1500분, 25시간정도 소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왜 그랬냐고? 제일 쉽고도 더 물어볼 이유가 없게 만들 대답은 아무래도 재미있으니까겠지.
하지만 왜 재미있었는지 나름대로 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재미있게 봤던 이 작품들이 케이블 만화 채널에서도 방영되는 것이라 적어도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작품들을 봤는지, 만화 즐겨보기엔 왠지 조금 철지난 나이에 왠 생뚱맞은 짓이냐는 반론에 대비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거창하지도 않은 우스운 멘트는 그만하고 기록할 내용으로 넘어가자.

2. 이야기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의 힘. 내가 요즘 만화에 빠져사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다.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훈을 구함도 아니다. 요즘 코메디 프로에 나오는 어떤 개그맨도 책 줄거리를 소개해 달라니 결론만 빨리 이야기해주는 부하들을 닥달하다가 씁쓸하다는 멘트를 계속 날리던데, 아마 그도 이야기가 고팠나보다.
이야기는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끝이 궁금해야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 꾼은 청자를 궁금하게 만들어 결국 그를 끝장까지 몰고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말은 많이 하지만 이야기를 잘 하는 재능은 부족한 것 같다. 나 스스로 말을 하다가 잠깐씩 멈춰설때, 그러니까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재미없게 풀어가는 내가 뻔히 보일때 그런 것을 느낀다.)
이야기의 힘은 결론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정에 끌어들이는 것에 있다. 과정에는 항상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다보면 결국 나는 선의 입장에도 악의 입장에도 서지 못하는 그 어딘가에 나를 위치시키게 된다. 이야기에 끌려다니며 배우는 것은 '공감'하는 힘이다.
내가 누군가를 공감하는 것은 나 역시 그런 경험의 언저리에 서있어 보았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로서 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인 나는 결국 내 경험을 들추어 보고 있는 것이다.
우정의 이름 앞에, 혈육의 이름 앞에, 사랑의 이름 앞에, 진리와 선의 이름 앞에, 또 구원의 이름 앞에 나를 세워보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몰아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좀 어렵다. 정말 몰아세워지는 것은 힘든 경험이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허구다.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현실처럼 보여준다. 비틀고 짜내고 왜곡시켜서라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헝클어진 딜레마들을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대비시켜 우리 눈 앞에 펼쳐놓는다. 들이댄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결말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미 과정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코드기어스-반역의 를루슈
3. 불친절함
하지만 그 이야기는 친절하지 않다. 쉽게 말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하는 모든 욕심을 뛰어 넘어 그냥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사랑은 깨어지고 우정은 변한다. 숭고한 결의는 찰나의 열정이었으며 대의명분은 구조화된 왜곡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외치는 '세계(世界)'는 이야기 속에서 허구의 옷을 입고 우리들의 불만족을 해결시켜주는 노리개가 되기를 기꺼이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들의 이야기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그 친절하지 않음이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만들어낸 그들만의 세계, 혹은 세계관을 진지하게 대하도록 이끈다.
우리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행복한 엔딩이 가벼운 것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더 중요한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그들 나름의 고민을 포장하고 또 포장해서 독자들에게 던진다.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독자라면 고통과 불만족의 포장으로 싸여있는 박스를 풀어 정말로 그 속에 들어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내가 또 직면해야 하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하늘을 뚫는 것이든, 정의롭고 상냥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든, 
숭고한 결의에는 그만한 책임과 희생이 뒤따른다는 메세지를 이 작품들은 기꺼이 던진다. 그것이야말로 이런 불친절함 속에 담겨진 세계의 진실이다. 
안락함과 행복한 느낌속에 쌓여 살기만을 원하는 이들이 만화를 사랑할 것 같이 생각할수도 있지만(또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이 목표했던 바는 아마도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대하고 싶다. 

4. 나의 이야기
아마도 돌아와야 할 지점이 있다면 결국 나의 하루하루일 뿐이다. 
이야기의 힘으로만 먹고 살아갈 수는 없다. 어쩌면 이야기는 하나의 기운일 뿐 그 현실의 실체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현실이 줄 수 없는 해답을, 아니 적어도 질문만큼을 던져주려 노력한다. 현실이 덮어두려 하는 치열하고도 끝없는 고민속에 다시 독자들을 빠트려버린다. 
헤엄쳐 나오느라 버벅거린만큼 힘이 빠진다. 시간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만큼 성숙할 수도 있다. 
만화들을 보면서 '싸움('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들었다. 
"이것이 나의 싸움(私の싸움, 나는 그것을 얼마전에는 공부에 비유하곤 했었다. 두 가지의 사람이 있다고. 싸움자체를 즐기는 싸움꾼과 싸워쓰러트려야 하는 상대(목적)때문에 싸우는 싸움꾼.
항상 "꾼"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내가 싸우는 싸움이 무슨 싸움인지, 또 내가 어떤 싸움꾼인지도 모른채 어딘가에 오르려고만 노력해왔다.
하지만 몇년전 부터 "싸움" 자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나는 어쩌면 이제 그 앞에 붙는 수식어 "나의(my)"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퍼즐을 다 맞추기 위해서는 아마 "왜(why)"의 질문에도 답해야 할 것이다. 
모아보자면 어떤 싸움꾼이, 어떤 싸움을, 왜 싸우고 있는가?
그래, 그게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바로 그 삶의 현실이고 이야기의 한 복판이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일상으로. 
그래도 나는 운좋게 이런 사치와 호사를 누릴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문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하고 고민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참으로 운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내 현실로 더 돌아가기 전에 '독법'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이제 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어내며 그 속에 나를 자리매김해야 할 텐데 어떤 이야기를 읽고, 또 그 이야기속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이야기의 힘은 뭘까. 어쩌면 이야기는 무엇을 주지 않더라도 그냥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다 재생해 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정도 느낌으로만 적어놓고 싶다. 그게 적당히 정직하고도 조금은 감추는 절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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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일상/생각 2009/04/27 23:30

사람이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벗어나기 힘든 자기 사랑의 굴레 때문일 것이다.

나를 다 내어주는 것은
곧 나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어느 생명도
아니 인공지능을 가진 어느 기계조차도
자의식이 있는 개체라면
쉽사리 자기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결핍된 채 살아간다.

그 결핍은 분명 누군가의 희생과
내어줌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참 아이러니한 뒤틀림이고
왜곡이다.

우리 삶의 무수한 질곡을 만들어 내는 그 시작점에
그 뒤틀림이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언제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또 한 사람으로서
내 고민도 그 필연적인 상황에 맞닿고 있다.

나는 어디까지 사람을 목적으로 대할 것이며
또 어느 경우에는 나를 앞세워
그 사람의 가치를 도구적 효용성으로 계산할 것인가.

선명하고 분명한 답은 없지만 적어도 그 비율과 균형에 있어
사람들마다 다른 답을 내놓는 것 같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살고자 좀 더 나에게 중심을 맞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해 왔는데
세상엔 나보다 더한 사람도, 또 덜한 사람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경우마다 변수가 참 많다.

좀 더 단순한 세상이었으면 어떨까.
또 좀 더 완전한 인간이었으면 어떨까.
더 실수가 적은 삶이었으면 어떨까.

하지만 내 몫은 항상 과거가 아니라
현재고 미래다.
삶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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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관계, 사람

공부

일상/생각 2009/04/21 22:19


해야할 공부를 해야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지.
내 고민을 풀어야지.
억지 고민을 만들고, 남의 고민을 쫓지 말아야지.

고민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삶 속의 현장을 들여다봐야지.
내가 살고, 고민하고, 부대껴야 하는 그 속에서
나는 공부해야지.

타이틀이 무슨 소용인가.
밥벌이가 그렇게 급급한가.

아직은 이런 여유를 부릴 정도로
내 삶과 내 마음이 넉넉하니
나는 조금더 치열하게 살아보아야지.
삶 속으로 좀 더 들어가야지.

생명력으로 넘쳐날 수 있도록,
공부하는 사람도 그런 생명력에 넘쳐날 수 있도록,
그렇게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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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공부